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34) 11. 고을 수령들이 찾은 임진강
수정 : 2022-02-09 01:32:35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34)
11. 고을 수령들이 찾은 임진강
(1) 이수(伊水). 이천부사의 임진강 유람기
▲판교군(옛 이천부의 한 영역) 임진강. 사진은 조선향토대박과(평화문제연구소)
배를 타고 이수(伊水)를 건넜다. 강을 따라 사인암에 이르니 푸른 절벽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물이 휘감아 도는 어귀로 기암괴석이 가득하다. 물결이 사납다. 폭포수는 요란하고 물방울이 튀어 올라 싸락눈이 날리는 듯했다. 군지포에서 점심을 먹고 사도, 용연을 따라 응탄애를 넘었다. 골짜기 여울물은 여전히 세차게 흐른다. 수십 리를 가도 물소리가 귓전에 쟁쟁하다. 저녁에 추곡촌에 도착했다.
다음 날 일찍 개련천을 건너 고달산으로 올랐다. 암석과 여울과 폭포, 눈에 보이는 모두가 아름다워서 다 감상할 겨를이 없다. 식송촌을 지나니 낙락장송 여덟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옹과 무학 두 대사가 심었다고 전해온다. 귀락사 터를 넘어서 보살사로 들어갔다. 보살사는 무학이 창건하고 공민왕이 중수했다. 지금 사찰은 그 뒤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거주하는 승려가 20여 명이었다. 붉은 비단으로 끈을 맨 무애호라는 검은 표주박을 보았다. 무학이 쓰던 것이라고 한다. <금광명경>과 <연화경>도 볼만했다. 그중 한 첩에는 공민왕의 글이 담겨있었다. 먼저 죽은 노국공주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는데 나옹대사의 도장이 끝부분에 찍혀 있었다.
고달산을 넘어 무량곡에 이르렀다. 바위산이 깎아지른 듯 높다. 푸르고, 밝고, 비단구름에 그윽하고, 기이하고, 넉넉하며, 온화하니 글로는 다 늘어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사람이 우뚝 서 있는 듯도 하다. 마침내 바위가 있는 곳을 지나자 확 트여 넓은 곳이 나타난다. 여기부터는 곡산 땅이다. 고달산의 남은 지맥이 이어진다. 한참 동안을 멈춰 서서 차마 떠나지 못했다.
마탄 다리를 건너서 갈산온천을 구경하고 감로사에 들어갔다. 옛날에는 온천탕이 여덟 개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섯 개가 막혔고 나머지 세 개만 대나무 홈통을 통해서 탕정으로 들어간다. 누린 냄새가 독하다. 유황 기운이 있고 물은 뜨거웠다. 고질병이 있는 자가 목욕하면 자못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일찍이 세조가 행궁을 두었는데 지금은 허물어져 없다.
송애를 넘어서 광복동으로 들어가니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산이 빙 둘러 막힌 가운데에 큰 들이 열려 있었다. 깊은 골짜기 안에 한 굽이 별천지가 펼쳐졌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런 모양일 것이다. 산마을이 듬성듬성 하고 개와 닭은 조용하다. 마음과 정신이 아늑해졌다. 광복동이 이천의 절경이란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골짝이 깊고 험했지만 동구로 들어온 뒤에는 탁 트이고 광활했다. 일찍이 이곳에 와서 집을 짓고 산 이가 없고 아름다운 경치를 기록한 자도 없다. 이야말로 하늘이 아끼고 땅이 숨겨서 임자를 기다린 것이라 하겠다. 양음산 너머로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여 왔다. 산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눈발이 얼굴을 때렸다. 급히 배가 드나드는 나루를 건너 가려주촌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감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견탄애, 문암, 원현, 응탄애, 산도현을 넘었다. 한지막촌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회현을 넘고 이수를 건너서 이천으로 돌아왔다.
▲갈산온천(북 강원도 판교군) 유적발굴현장. 연합뉴스 2008
이의현은 노론의 영수로 영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고관이다. 한때 외직인 이천도호부 부사로 부임한 적이 있다. 이천은 임진강 북쪽 강원도 산골마을이다. 9개월을 머무는 동안 금강산을 유람하고, 임진강을 따라 이천부 곳곳을 여행한다. 윗글은 이천을 여행한 ‘이천제승유람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수는 이천의 임진강을 말한다.
이른 봄 출발한 유람은 3박4일간 이어졌다. 해는 1710년이다. 이의현은 강과 여울과 협곡, 폭포와 기암괴석에 놀라고, 고달산에선 공민왕과 불교를 만나기도 한다. 이어 고달령을 넘어 갈산온천과 광복동 분지를 돌아본다. 온천에는 세조가 다녀갔다는 전설이 전하고, 무릉도원이라 격찬한 광복동은 한때 임꺽정이 무리를 이끌고 자리 잡았던 곳이다.
이의현의 외직 보임은 조정이 배려한 휴가의 성격이 짙다. 짧은 부임기간 중에 여행이 잦았다. 한직의 즐거움이 여러 곳에 보인다. 덕분에 3백 년 전 임진강 상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전한다. 휴전선 북쪽이니 글의 진위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앞서 간 이의 길을 따라가며 확인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그때를 기다린다.
▲대동여지도 이천 부분. 이의현이 다녀간 고달산, 광복동, 갈산온천 등이 보인다.
#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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